필립 터너(Philip Turner)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한국의 성소수자(LGBTQ) 권리에 대해 앞장서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동성 배우자를 인정받은 최초의 외교관이자 동성 배우자와 대통령을 만난 최초의 인사일 것이다. 나아가 K-pop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유일무이한 대사다. 터너 대사는 한국의 다양성과 LGBTQ 커뮤니티를 놓고 변화하는 관점에 대해 우리 매체(Hongi.co.nz)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은 비교적 보수적인 사회이며, 특히 성적 지향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다”고 대사는 입을 열었다.
“지난 4년 동안 한국에 주재하면서 ‘커밍아웃한’ 게이/레즈비언 커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터너 대사와 그의 남편 히로시씨는 28년 동안 함께 해왔다. 이들은 터너 대사가 한국으로 부임한 2018년에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처음 한국에 도착한 후 청와대에서 공식 신임장 수여식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청와대는 대통령으로부터 [외교관] 임명장을 수여 받는 곳이며, 모든 절차가 매우 공식적으로 이뤄진다. 또한 가족 중 1인을 데려올 수 있는 의전이었다. ‘잘됐다, 히로시를 데려갈 수 있겠다’고 하자 ‘안 된다’고 하더라. 동성 커플의 결혼은 (한국에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히로시를 임명식에 데려갈 수 없었다.”
터너 대사는 홀로 그 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그러나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뉴질랜드에서 이뤄지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한국 정부는 그 결정을 바꿨다. 터너 대사는 혹시 문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게 아닌가하고 추측했다.
그리하여 히로시씨는 2019년에 외교관의 배우자로서 A1 비자를 발급받았다. 그는 이 비자를 받은 최초의 동성 배우자이기도 하다. 같은 해 터너 대사와 히로시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함께 대통령 관저로 들어가는 역사를 새로이 썼다.
“특히 만족스러운 부분은 그 이후 현재 한국에서 (자신의 동성) 배우자를 인정받은 LGBTQ 대사가 또 나왔다는 점이다. 다른 외교관들도 이제 자신의 동성 배우자를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됐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고맙다. 만약 그때 그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 있지 못했을 것이다’는 인사를 전해 받았다. 한국이 더 다양하고 관용적으로 변해가는 큰 흐름 속 하나의 줄기이길 바란다.”
터너 대사는 한국이 당면한 과제 중 하나로 지난 2년 간 국회에 발묶여 있는 차별금지법안을 언급했다. 이 법안은 1993년 뉴질랜드의 인권법과 유사하며 성별, 종교, 민족, 성적 지향 등 다양한 기준에 대한 차별 금지에 관한 것이다.
“그 중 LGBTQ 부분은 정치적으로 특히 민감할 뿐만 아니라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문 대통령 시절에도 이 법안의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여전히 이 법안은 대기 중이며, 새로운 정부에서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려 한다.”
특히 올해 서울프라이드 행사에서는 LGBTQ 이슈에 대한 민감도가 부각됐다. 주최 측은 서울시에 일주일 동안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허가를 신청했다. 이번 신청이 완전히 거부된 것은 아니지만, 단 하루 동안만 허가됐다.
“타협안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양면적의 입장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LGBTQ에 대한 시선은 변하고 있다. 2019년 퓨 리서치(Pew Research) 센터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 응답자의 44%가 동성애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답했다. 2007년에는 18%에 불과한 수치였다.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의 증가는 같은 기간 영국이나 캐나다에서 조사된 것보다 더 크다. 2021년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30대 여성이 가장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응답자의 60%가 사회가 동성애, 양성애, 트렌스젠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동의했다.
터너 대사는 4년의 임기 동안 이러한 변화를 감지했다고 말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성소수자 반대 시위대가 퍼레이드 참가자들보다 더 많았다. 올해는 그 반대였던 것 같다. 퍼레이드 바깥에도 더 많은 지지자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를 위한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방 도시들에서도 이러한 행사들이 개최된다.”
일례로 2018년 인천광역시의 첫 번째 성소수자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천 명의 반대 시위자들이 퍼레이드를 막는 과정에서 신체적 마찰이 빚어졌었다. 그러나 터너 대사는 이러한 수준의 갈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TV를 통해 더 다양한 캐릭터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20년 인기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에서는 트랜스젠더와 흑인의 캐릭터가 부각되기도 했다. 또한 올해에는 게이 데이트 리얼리티 쇼인 ‘맨스 로맨스’가 주류 채널은 아니었지만 한국 TV를 통해 최초로 방영됐다. 이어서 두 번째 쇼인 “Marry Queer”에서도 게이 커플들이 데이트하는 모습이 중점적으로 비춰졌다.
터너 대사는 이에 대해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을 건네면서, “그러나 우리가 바라던 것만큼, 또는 다른 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만큼의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터너 대사와 히로시씨는 LGBTQ 커뮤니티의 수용을 옹호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다양성, 평등, 관용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서울 프라이드 행사에 앞서 뉴질랜드 관저에서 리셉션을 개최했다. 고위 공무원부터 드래그 퀸까지 약 200 여명이 참석했다.
올해 초 대사 부부는 게이를 주제로 한 케이팝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한국의 대표 게이 배우이자 성소수자 권리 옹호자인 홍석천(일명 ‘탑지, Top G’)의 뮤직비디오에서 터너 대사와 히로시씨는 뉴질랜드 관저 밖에서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을 연출했다.
터너 대사는 “처음 제의가 왔을 때 당연히 뉴질랜드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면서 “‘아… 그럼 동성애를 주제로 한 케이팝 비디오에 출연하겠다는 건가? 음, 그럼 잠깐 생각해볼 시간을 달라’는 답을 받았지만 곧바로 뉴질랜드 외교부는 이 프로젝트를 매우 지지해줬다. 다양성에 대한 뉴질랜드의 태도를 오늘날 한국 사람들에게 재치 있게 대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터너 대사는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다소 긴장했었으나 이후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아리랑 TV가 제작한 K-pop ‘콘투어’ TV 쇼에도 출연하게 됐다. 이 쇼는 뉴질랜드를 주제로 한 두 시간짜리 프로그램이었다.
뉴질랜드에서는 2013년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이다. 터너 대사는 다양성 문제에 대한 뉴질랜드의 진보적인 접근법이 해외에서 호의적인 관심을 끈다고 밝혔다.
“종종 대사관을 통해 국회, 언론, 세미나 등에서 이런 종류의 이슈에 대해 얘기해주십사 초대받는다. 이런 이슈에 있어 뉴질랜드가 앞서 간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터너 대사는 뉴질랜드 역시 지금 한국이 나아가고 있는 여정과 매우 유사한 과정을 거쳐왔다고 강조했다.
“처음 외교부에 입사했을 때, 뉴질랜드 내 남성 동성애자는 불법이었다. 그러나 이후 여러 가지 괄목할만한 변화들이 이어져 왔다. 90년대 초 인권법과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등 일련의 이정표가 있었다. Civil Union (2004)과 동성결혼법(2004)을 포함한 후속 개정안도 마련됐다. 변화의 흐름 각 시점에서, 뉴질랜드에서도 매번 논란의 여지와 많은 반대가 있었다. 사회 변화는 쉽지 않다. 모든 사회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지금의 뉴질랜드 역시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직면하고 있는 많은 도전과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관련성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한국의 국민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글쓴이: 헤이든 피콕(Hayden Peacock)
터너 대사가 출연한 “K-Pop Star” 뮤직비디오 보기: